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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2동 행정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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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소개

본문내용

유래

    • 백운동은 수박등 남쪽능선과 까치고개 건너 비석등(쥐불등: 80m)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봉선동과 주월1동에서 내려온 시냇물이 만나는 곳으로 "벽도교" "진다리"가 설치 되어 있었고 "동애봇들"가의 네거리 농촌이었다. 동명의 유래는 밝고 따뜻한 곳이라는 뜻으로 "난지실"로 불려오다가 한자명 으로 바꿀 때 벽도, 백운이 되었다. 백운1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에 도천면에 속했고, 구한말에는 도천면 백운리였다.
    • 1914년 4월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천면의 백운, 신기, 옹정, 신사리 각일부와 부동방면의 벽도리가 합하여 효천면 벽도리가 되었다. 1923년 4월 1일에 광주읍의 확장으로 효천면 벽도리와 주월리가 백운정이 되었다.
    • 1947년 8월15일에 백운동으로 개칭되면서 (백운동)의 호칭이 시작 되었고, 1948년 4월1일 백운동회로 잠시 불리다가 1952년 동회제 폐지에 따라 본래의 백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1961년 3월 10일 출장소 제 실시로 남부 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7월1일 구제 실시로 남부, 서부, 지산 출장소를 통합한 서구 관할로 되었다. 1985년 11월1일 백운동이 백운1,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86년 11월1일 광주시의 광역시 승격과 함께 광주 직할시 서구 관할 1995년 3월1일 서구의 분구와 함께 광주 광역시 남구 소관으로 관할 변경이 되었으며, 1992. 9. 1. 동주민센터 청사를 신축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 1947. 8. 15 백운동으로 개칭.
  • 1973. 7. 1 구제 실시에 따라 백운동은 서구 관할이 됨.
  • 백운이란 지명은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발견되지 않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표』에 도천면 백운리로 처음 등장한다.
  • 난지실(백운리), 벽도리, 진다리, 머구머리, 사차리(산밑), 재 마당 등의 여러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이 일대를 통칭하여 백운이라고 부르게 된 정확한 연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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